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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소개

유래 및 연혁

소안면 연혁

1018년 고려시대 현종 9년 이래 달목도라는 도명으로 영암군에 속했다. 조선시대 명종대(1546~1567년)에 임진왜란으로 비워 두었던 달목도에도 처음으로 김해 김씨, 동복 오씨가 월항리에 입주함으로써 다시 촌락을 형성하였고, 그 후 각 마을에 여러 성씨들이 입주하여 정착하였다. 그 동안 1627년 이진진이 설치되면서 이후 제주를 왕해하는 관헌들에 의해 소안도로 도명이 자연스럽게 개명되었다.

1866년 청산진이 독진으로 설치되면서 군무와 행정을 청산진에서 관할하다가 1895년 모든 진이 혁파되면서 1896년 완도군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영암군 소속 소안도에서 완도군 소속 소안면이 되었다.

조선시대 정조대(1777~1800년)부터는 토지를 연령궁에 속하게 하여 매결당 백미 4석 2두씩의 가중한 세금 징수로 민폐가 극심하여 1864년 고종원년에 전 섬주민이 상부에 탄원 진정했다. 이에 상부에서는 비자리에 별장을 두어 주민을 보호하였으며 그 후 1916년 토지조사지정 이래 섬 주민들은 이기용을 상대로 제소하여 투쟁 10여년 만에 드디어 민간소유로 확정하였다.

소안면은 완도군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완도항에서 20.8km 거리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청산도를 접하고, 북쪽은 완도를 서쪽은 노화도와 보길도가 인접해 있고, 남쪽은 멀리 제주도를 바라보고 있다. 소안면은 4개의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소안도의 지형은 남쪽으로 길게 뻗은 장고형을 이루고 있다. 이진~제주간 항해 때 이곳에서 해신제를 지냈다.

소안도陳(陳營)

1627년 인조 5년에 만호진으로 승격한 이진진의 관할에 속한 권관진(權官陳)을 비자리에 두었다가 1864년(고종원년)에 별장시무소로 격상되었다가 그 2년 후 1866년 청산독진이 창설되자 그 관할에 소속되었다.

이진진은 제주출입의 통제소를 겸하였으며 특히 군마 수송선의 출입이 빈번했다. 제주항로의 중간지점인 소안도는 목장도 갖추어진 중간기착항 역할을 했다. 가학산(359m)에 요망대를 축설하여 감시하였으며 1866년 청산진이 설치되어 그 관하에 예속되었다 . 그 후 같은 해 1866년에 아주 소안진(所安陳)을 혁하하고 청산진에서 감관을 파견하여 민병으로 260명의 작대군을 편성하여 5개소(가학산, 대봉산, 자지도, 횡간도, 구도)의 돈대를 배일(排日:날마다 얼마씩 안배하여) 수직하게 하는 한편, 그외 행정 및 군무까지도 수임 수행했다.

달목도 유래

달목도가 사서에 등장한 것은 「세조6년(1460) 6월 12일 영암군의 달목도 등의 섬에 숨어 있는 자들을 추쇄하여 다스리게 하다.」의 실록의 기사가 달목도의 태초의 등장이고, 그 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등장하고 있어 그 출간년(1530)까지는 여러 곳에 보이고 있다.

달목도의 뜻은 달과 달이 목으로 이어진 섬으로 보았을 때 달은 산이나 취락(집단)의 고자이고 목은 항項(목항)의 차자(借字)이다. 그럼으로 달목도(達木島)는 섬의 모양새를 외관상 보인 대로 표현한 섬과 섬이 목으로 이어진 섬이라고 외지인에 의해 명명된 자연발생의 지명이다. 그러나 17세기(1600년대) 이후에는 달목도로 등장하지 않는다.

  • 성종 21년(경신 1490년 12월 13일) 전라도 경차관 이영희 등이 수적과 접촉한 의심이 있는 사람을 국문하게 했음을 아뢰다.
  • 중종 5년(경인 1510년 6월 6일) 전 청산 현감 박지번이 왜구 출몰로 노도·달목도의 목장을 옮길 것을 청한다.

소안도 유래

소안도(所安島)가 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숙종 10년(1684) 6월 9일;김석주가 산산의 궁방의 땅과 금위영이 사들인 영암 땅의 소안도(所安島)와 비미도에 관해 말하다」의 1684년이다. 1627년의 이진진 설치는 단순히 국방의 임무만이 아닌 제주 내왕업무도 관장하였다. 옛날에 강진 탐진포와 해남 관두포에서 제주내왕을 관장할 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진에서 제주를 왕래할 때에는 반드시 소안도 월항리(月項里)를 거쳐 오가도록 하였다. 이진과 소안 사아에는 잔잔한 바다이나 제주와 소안 사이는 가없는 큰 바다로 평상시에도 파도가 일고 물결이 거칠어 바다를 처음 접한 관원들은 공포에 시달려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다 소안도에 상륙하면 안심한 곳 즉, 소안(所安)이라고 외치게 된다. 이렇듯 소안은 관헌들의 입에서 입으로 또 조정으로 번져가 결국 관찬(官撰) 지명으로 이진진 설치(1627년) 이후에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발생된 지명이다.

또한 섬 주민들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기개가 용맹함으로 외부인들로부터 침범을 받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한여 사람들이 100세까지 살기 좋은 곳이라 바소(所), 편안안(安) 섬도(島) 소안도 라 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피난민이 이주하면서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감옥에 들어간 사람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던 섬" 이라고 할 정도로 항일 민족 해방운동의 역사가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도명(島名)은 소안(所安)이나 민불안(民不安)이요, 산명(山名)은 가학(駕鶴)이나 학불래(鶴不來)'라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항일투쟁의 함성이 드높았던 선열들의 애국심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 소안도의 또 하나의 자랑이다.

마을유래

비자리

임진왜란 때 전란을 피해 진주 강씨가 처음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원래 비자나무가 많아 비재동(榧在洞;榧在洞을 碑在洞으로 착각되기 쉬우나 비자리에 세워진 비는 "관찰사송덕비(1868년)", "제주목사불망비(1875년)"의 일로 榧子里는 이미 1700년대의 공문서에 등장하는 里名이다)이라 불리다가 비자리로 개칭했다. 본디 이 동네는 강진포구에서 제주로 가던 관원들이 머물러 해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이들 관원의 비석이 많이 섰으므로 '비석거리'라 불린 바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후 호구가 점점 증가하자 1946년 해방 이후에 마을을 비동리와 비서리로 분리했다.

이목리

조선시대 효종대(1650~1659)에 수원 백씨, 남평 문씨, 전주 이씨 등이 처음 입주했다는 설과 안동 권씨가 처음 입주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명확한 근거가 모두 없고 거의 같은 시기에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마을 주변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남리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이목리라 표기한 것이다. 이곳 지명도 노화도의 이목과 같이 배가 드나드는 포구라는 뜻을 지녔다.

월항리

명종대(1546~1567)에 김해 김씨가 장흥에서 처음 건너와 입주하자 때를 같이하여 동북 오씨가 입주했다. 소안도 입주민 중 제일 먼저 도착한 마을이 월항리이다.

마을의 유래는 1627년 이진진이 설치된 이후 이진에서 제주를 향해 출항한 배가 소안도에 기착한 길목 마을이었기에 소안도의 그 당시 지명 달목(達木)이라는 이름을 붙여 달목마을로 불렀고 달목을 차자(借字)하여 달(月),목(項) 월항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북암리

1,600년경 김해 김씨가 강진에서 처음으로 들어와 입주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비자리에 거주하던 풍천 노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마을 앞 바닷가의 바윗돌이 아름답고 깨끗하며 소재지 마을 뒷편에 위치하고 있어 뒷바구(뒷바위)라 하였으며 마을이 본도의 북쪽에 있다하여 북암리라 한다.

가학리

임진왜란 전부터 거주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확증은 없고 1,600년대 초계인(草溪人) 최우근이 당파싸움으로 은거처 해남 이진을 거쳐 입주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같은 시기에 창원 황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입향인(入鄕人)이 뒷산의 형세가 학을 닮아 가학이라 불렀으며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온 곳이라 하여 가학리라 불리워지고 있다.

맹선리

고려 정종때 조씨(曺氏)가 유배되어 살았다는 설과 이조 인조때 창녕 조씨의 입주설이 있으나 확증은 없고, 1,500년경 진주 강씨가 입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상하 2개의 마을을 합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해변에서 산세에 이르기까지 경관(景觀)이 수려(秀麗)하며 지세(地勢) 신선(神仙)을 닮았다 하여 맹선리라 부르고 있다.

서중리

1,500년경 진주 강씨가 제주도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무르게 되어 이 마을에 정착하였다는 설과 이조 선조때에 고씨, 공씨가 입주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동시대에 같이 입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에는 진(鎭)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주위의 산이 매우 아름다워 진산(珍山)이라 하였으며, 행정리로 분리되면서 진산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서편과 중리가 합해진 마을을 서중리라 하고 있다.

동진리

이조 선조때에 제주 고씨와 곡부 공씨가 입주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평산 신씨와 진주 강씨가 동시에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본다.

주위의 산이 매우 아름다워 진산(珍山)이라 하였으며, 행정리로 분리되면서 진산리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동진리라 부르고 있다.

소진리

1,500년경 전주 이씨가 인근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다 정착하였다는 설과 제주도 부근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대피하게 된 것이 이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초의 명칭은 마을 뒷산이 장삼을 닮았다 하여 장삼리로 불리었으나, 진산리에서 분리되면서 작고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소진리로 명명하였다 한다.

부상리

1,500년경 제주 고씨와 전주 이씨가 먼저 입주하였다는 설과 이조 정조때에 전주사람 이언필, 이언창이 은거차 맹선리를 거쳐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는 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사람들이 많이 끌려 오는 곳이라 하여 한문의 "끝 예(曳)"자를 써 처음에는 "예하리"라고 불리어 오다 발음하기가 까다로워 "예리"→"이예리"→행정구역이 지정되면서 "부상리"로 변천하여 현재에 이른다.

미라리

이조시대 효종대에 평산 신씨가 은거차 이곳으로 이주하여 왔고, 그후 김씨, 박씨, 고씨 등 여러 성씨가 이주 마을 형성하였음.
아름다운 경치가 도처에 널려 있다 하여 미라리(美羅里)로 명명되었으며, 미라팔경(美羅八景)이 있어 유명하다.

鶴山歸雲 봄 기운 머금은 가학산 봉우리에 걸린 구름이
大洞長川 큰골 기슭을 감돌아 흐르는 내에 걸쳤도다
美浦歸帆 미라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負兒望月 아부산에 떠오르는 달빛과 어우러 지도다
前坊嘉林 동네 앞 아름다운 숲과
龍潭怪穴 용이 놀던 곳의 굴은
綱濱漁火 조강날의 챗배불과 같이 하는데
烏山洛照 어허 까막산 저녁놀은 그 또한 가관이구나

당사리

조선시대 선조(1568~1608)에 청주 한씨가 처음 입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한씨는 제주로 귀양가다가 풍랑이 심하여 일시 풍랑을 피하고자 상륙하여 살펴보니 물과 풍치가 좋아 이 섬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고 거주하기 시작한 이후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마을의 유래는 제주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했다고 하여 항문도라 하였으나 후에 자지도라 불렀으나 이 두가지 이름 모두 어감상 좋지 않아 옛 신라시대 청해진 때 당나라를 왕래하다가 일기가 불순할 때면 이 섬에 상륙하여 좋은 날씨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던 암자가 있다는 전설로 인하여 당사도라 개칭하고 동시에 마을 이름도 당사리로 이름했다. 본디 자지의 이름은 '파도가 심한 곳'의 뜻으로 '놀구지'였을 가능성이 많다. 이 섬의 남단에는 제3등 등대가 있다.

횡간리

연대 미상의 밀양 박씨와 창원 황씨가 먼저 입주하였다고 하나 후손들이 없으며 임진왜란후 김해 김씨가 입주하여 마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시 완도에 있던 충무공 휘하의 수병들이 거북선을 타고 몰려나와 적선을 끝까지 쫓아가서 몰살시켜 버렸다. 이때부터 왜놈들이 이곁을 지나갈 때마다 무서워 힐끔 힐끔 곁눈질을 하며 지나갔다 하여 횡간도(橫看島)라 칭하고 있다.

구도리

1,820년대 김해 김씨가 처음 입도(入島)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섬의 모양이 비둘기를 닮았다 하여 구도라 불렀다는 설과 입주시 섬주변에 비둘기가 많아 구도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각시여(전설) : 젊은 부부가 노를 저어 육지 처가를 가던 중 잊고온 물건이 있어 부인은 섬에 내려 놓고 남편만 급히 갔다 와보니 섬이 물에 잠겨 부인도 없어져 이후부터 각시여(암로)라 불리웠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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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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