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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면사무소 이난용총무팀장님

작성일
2019-06-24
등록자
송소영
조회수
768
첨부파일(1)
1561365429574.jpg

얼마전 보길도로 문학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보길면사무소 이난용 총무팀장님의 도움으로
문학심포지엄을 잘 마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문 기사를 올려드립니다.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2856
[仁松시선]보길도, 孤山윤선도문학관에서
경기신문
승인 2019.06.23 18:59
박병두 시나리오작가·소설가 수원영화인협회장
얼마전, 수원문인들과 완도 보길도와 청산도로 심포지엄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보길도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은 윤선도가 정원을 꾸미고 살던 곳이다. 고산 윤선도(1587~1671년)는 가사문학의 효시로 국문학의 최고봉이다. 우선 윤선도문학관 행정책임자인 보길면사무소 이난용 총무팀장의 배려로 문학심포지엄을 성대하게 마쳤다. 향토사학자보다 더 많은 애착과 열정에 감탄했다. 완도군은 5만 명을 조금 넘는다. 필자가 사는 수원은 125만이다. 수원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문학사적인 도시다. 정조대왕의 홍재전서는 정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정조는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인본주의 사상과 문예부흥의 군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에 걸 맞는 문학관이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인공지능시대와 고령화시대를 접하는 문인들도 깊은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 전체 기사는 첨부파일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신문기사내용]
얼마전, 수원문인들과 완도 보길도
와 청산도로 심포지엄과 분학기행을
다녀왔다. 보길도는 '어부사시사(
S2E'를 지은 운선도가 정원을
꾸미고 살던 곳이다. 고산 윤선도
0587~1671년))는 가사분학의 효시
로 국문학의 최고봉이다. 우선 윤선
도문학관 행정책임자인 보길면사무
소이난용 총무팀장의 배려로 문학심
포지엄을 성대하게 마쳤다. 향토사학
자보다 더 많은 애착과 열정에 감탄
했다. 완도군은 5만 명을 조금 넘는
다. 필자가 사는 수원은 125만이다.
수원은 조선 22대 정조대왕의 문학
사적인 도시다. 정조대왕의 총재전서
는 정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
한 시문집이다. 정조는 시인이자 비
평가로서 인본주의 사상과 문예부흥
의 군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원에 걸 맞는 문학관이 없는 것은 안
타까운 일이고, 인공지능시대와 고령
화시대를 접하는 문인들도 깊은 고뇌
가 필요한 시점이다.
심포지엄에는 오세영, 최동호, 이
건청, 문태준 시인 등 문인들이 참가
했다. 수원문학창작연수와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인들이다. 심포지엄
을 마치고, 선생의 고결한 품성
을 담는 세연정과, 판석보, 곡수당과
낙서재, 동천석실을 돌려보았다. 곡
수당은 격자봉에서 흐른 물이 이곳에
이르러 곡수를 이룬다 하여 붙인 이
름으로 고산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던
곳이고, 낙서재는 고산이 창작의 주
거공간으로 1637년 보길도에 입도해
집을 지었는데 이집을 낙서재로 한
것이다. 동천석실은 이곳 부용동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경관으로 작
품을 창작하는데 명승으로 불린다.
어부사시사는 연시조로 65세 때 벼
슬을 그만 두고 전라남도 보길도의
부용동에 들어가 은거할 무렵에 지은
것으로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다. 세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 몸이 되어 강호한정(배
에 빠지는 것이 주제인데, 봄.
여름·가을겨울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름이 불어 있다.
이난용 팀장은 주말인데도 봄구하
고 고산에 대한 별한 이해를 돕는
소개를 시작으로 보겔도를 말해줬다.
예송해수욕장, 공름알 해변, 통리 솔
발해변, 보죽산, 고산문학 체험공원,
송시열 암각시문, 운선도문학창작실
등 보길도만 갖는 탐방지를 섬세하게
안내해주었다. 보길도는 바깥 바다와
연접돼 조류 소통이 원활하고 영양염
류 공급이 풍부하여 타 지역에 비해
수산물 맛이 우수하다며 사면이 바다
로 인구밀도가 낮고 각 마을 오수처
리시설로 바다오염을 방지하여 청정
해역을 유지하고 있다며 보길도만의
특산품도 빼놓지 않았다.
팀장의 정갈한 입담은 한편의 시처
럼 운율에 맞춘 전동적인 가락과 같
았고, 삶과 연결 지어진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었다. 보길도
인구는 3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보길
도의 가치를 고민하는 그의 얼굴에는
공직자의 길과 지역현안의 길에서 자
신의 한계라는 현실성도 미루어 짐작
해 읽을 수 있었다따. 꿰뚫고 있다는 지
은 아름다운 맑은 과 환경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
민들의 정서는 과거와 현재는 많이
달라져 있지만 섬사람들은 생활인들
이었다. 어민들은 가난한 것이 아니
라, 윤선도 시조시인의 향수처럼 섬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시를 쓴 시인 같
았다. 이러한 여정은 깨어있는 공직
자들과 주민들의 숙원으로 윤선도문
학관이 건립되었고, 인문화이 멀어져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동시
에 보길도를 찾는 여행의 문을 활짝
열어 준 계기가 된 것이다.
문인블과 함께 윤선도의 풍류와 문
학을 음미하는 보길도의 밤바다는 아
름다웠고, 예송리 바다 자갈받은 파
도도 잠에 취하듯 밤하늘의 은빛도되
황출했다. 사람이 반가운 휴먼도시와
인문학 도시를 간구하는 우리 수원도
이와 같은 문학에 의한 결속으로 공
직자와 지역문인들의 밀착된 B
(사유)가 좀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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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3-05-29
  • 조회수 :54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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