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식장 1부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김을 채취하는 치열한 현장.
땀과 노력이 키워낸 귀한 결실이 풍성하게 쏟아진다.
하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장애물들이 이들을 위협하는데 ….
“사람이 끌려 들어가 버려요, 각자 주의를 해야 해요."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바다 위, 이곳에서 펼쳐지는 숨 막히는 노동의 순간들.
“이것이 농사입니다, 바다농사 ”
혹한의 추위와 거친 파도를 넘어서 양질의 김을 수확하는 김양식장의 사람들을 만나본다.
이른 새벽, 어둠이 짙게 깔린 한 겨울의 부둣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다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모든 인원이 올라타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일터로 나간다. 삼십년간 바다의 일을 해온 선장 고동옥씨가 이들을 이끈다.
“김 채취하러 바다로 나가고 있어요. 김발 여러 줄에서 김을 채취해야 해요. 위탁판매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일찍 나가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20분을 달려 김양식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바다의 부표를 띄우고 김발을 설치하는 부유식 방법으로 김을 키우고 있다. 풍랑주의보로 발이 묶여 있다가 며칠 만에 나온 바다. 주의보는 해제됐지만 이날도 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김발 끝에 줄을 잡아 배 위로 끌어당기면 길게 늘어선 김발이 줄줄이 딸려온다. 이 김발이 채취기 위를 통과하면서 붙어있는 김들이 배 위로 떨어지게 된다. 짙은 바다 향을 머금은 김이 풍성하게 쌓여간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총 80여 미터의 김발 하나를 털어낸다. 작은 한 조각도 남김없이 싹싹 쓸어 담아낸다. 삼 개월 가량을 기다린 끝에 얻은 귀한 김들이다.
“전부 김밥용 김이라고 보시면 되요. 김을 채취하는 시기는 80일에서 90일사이인데 거의 90일을 많이 선호해요. 그정도에서 첫채취가 들어가는거죠”
김 채취는 10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5월까지 이어진다. 이때가 되면 국내주요 김생산지인 전남지역의 어민들은 쉴 틈 없이 바빠진다.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12월에서 2월사이가 이들에게는 넘어야할 고비다. 차가운 바닷물을 머금어 묵직해진 김발을 손으로 힘껏 당겨가면서 작업의 가속도를 붙인다. 한차례 채취선이 뱉어낸 김발은 앙상한 줄만 남긴 채 바다로 다시 입수한다.
“김을 총 몇 줄 채취하는 거예요?”
“60줄 정도 채취해요.”
하루에 60줄을 모두 처리하려면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채취기가 멈춰 선다.
“뒤에 걸렸다.”
김발이 엉켜서 걸려버린 것인데 ….
“내려”
조심스럽게 김발을 풀고 다시 작업을 재개한다. 수십 가닥의 줄로 연결 돼있는 김발은 항상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채취기가 돌아가는 동안 한쪽에서는 김발을 살피면서 막대기로 힘껏 내리친다. 수십 줄의 김발을 처리하는 동안 배위는 바닷물과 김으로 범벅이 된다.
“김발에 이물질이 붙어서요."
함께 딸려온 이물질은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바다니까 이물질도 껴요, 김발에 좋은 것만 걸릴 수는 없어요.”
남해와 서해 중간에 위치한 진도는 바닷물이 맑고 적조현상이 없어서 김양식장로써는 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미끄러운 김이 붙은 김발을 끌어올리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김발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다. 모두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작업을 집중한다. 특히 줄을 올릴 때와 내릴 때 주의해야한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김발이 올라오다가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사람이 서 있다가 김발에 밀려서 넘어질 수 있어요. 그런 경우만 주의하면 돼요.”
이들의 가쁜 호흡 속에 김이 배 한가득 차오른다.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시커먼 훈장이 작업복 가득 붙어있다. 90여 일간 애지중지 키워낸 결실을 싣고 육지로 향한다.
정오 무렵이 되면 항구에 채취선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빈틈없이 들어선 배 위에서는 하역작업들이 한창이다. 오전 내 채취한 싱싱한 생김을 자루가득 채워 넣는다.
김 작업은 모두 사람 손을 거쳐야한다.
“올려”
“올렸어”
“김을 몇 자루나 담아야 하는 거예요?”
“40자루요.”
“40자루 나요? 담는 것도 정말 일이겠어요”
“이게 일이죠”
배에 바닥 가득 깔려있는 김을 모두 퍼서 일일이 자루에 담아야한다.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김은 돌덩이나 다름없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가 무색하게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아버님 많이 힘드시죠?”
“네, 힘들어요.”
“땀이 엄청 나세요…. 아버님한테 김이 굉장히 소중하시겠어요.”
“그렇죠. 바다농사인데요, 이게 제 일이고요.”
김을 싣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경매에 들어간다. 배 한척 당 금액이 매겨지는 것.
그날 채취해온 김의 질에 따라 가격이 측정된다. 모두들 꼼꼼하게 김의 상태를 확인한다.
“위탁판매 시작하겠습니다.”
김 양식 어민에게는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9만 6천원”
“얼마에 팔린 거예요?”
“(120kg당) 4만 2천원에 팔렸어요.”
“왜 그렇게 받았어요?”
“김이 안 좋아서 그렇죠…. 같은 양의 김을 보면 저희 김이 짧잖아요, 좋은 김은 더 넓고 굵어요.”
“풍성해 보이네요.”
“그렇죠.”
길이가 길고 풍성할수록 좋은 값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김은 해외에서도 알아주는데 일본, 중국에서 특히 인기고 미국, 유럽 등 65개국에서 우리의 김을 맛보고 있다.
거기에 한 몫 하는 고동옥선장. 이날도 뿌듯한 결실의 기쁨을 맛본다.
“무게가 얼마나 나왔어요?”
“13,000kg 정도 나왔네요.”
“김이 많이 나온 편인가요?”
“거의 그 정도 예상했어요.”
“기분이 어때요?”
“돈이 생겼으니까 뿌듯해요, 얼마가 됐든 만족해야죠.”
그날 오후, 트럭 한 대가 항구로 들어온다. 다음 날 바다에 설치할 김발을 싣고 온 것.
부유식 김 양식에서 가장 주가 되는 장비를 배로 옮겨 싣는다.
“김을 생산하기 위한 제일 기본적인 설치 장비예요, 김발이 없으면 김 생산이 안 되니까요.”
김을 키우는 어민들은 장비제작부터 김 수확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담당한다.
오복저가 달린 긴 대의 양 옆에 김이 붙을 수 있는 그물을 단단히 묶어서 고정시킨다.
“총 몇 개 정도 묶는 거예요?”
“한 줄에 26개 묶어요, 내일 작업하는 양은 40줄 정도예요.”
그물이 꼬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배 한가득 차곡차곡 쌓는다.
다음날 새벽, 김양식장으로 향하는 길. 김발설치를 위해서 평상시보다 일찍 바다로 향한다. 전날의 피로가 가시기도 전에 일터로 나가는 몸은 천근만근이다. 먼 바다로 나갈수록 수온이 차기 때문에 더 오래 김을 수확할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지체 없이 김발설치작업을 시작한다. 가만히 서있기도 힘든 배 위에서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춰 김발을 내리는 작업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한참을 풀어낸 끝에 85미터 되는 김발 한 줄을 내렸다. 이곳에 김이 붙어 자라게 된다.
“위에 물살이 약한 곳은 김발에 포자를 붙이고요, 이곳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김 포자를 안 붙여도 김이 자연적으로 자라요. 김발 사이에 포자가 붙어서 크는 거예요.”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겨울바다에서 서른 개가 넘는 김발을 모두 내리려면 파도가 잠잠한 이때에 서둘러서 해야 한다. 이때에도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안전이다.
“저쪽에 김발 걸렸나 봐라, 걸리면 김발 다 찢어지잖아.”
김발이 뒤엉켜 버렸다.
“다시 풀어서 해”
선장님의 호통이 이어지는 가운데 휘어진 것을 빼내고 새 것으로 신속하게 교체한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처리해야 한다.
“김발이 사람 발에 걸리니까 항상 조심해야 해요. 선장도 안전사고 때문에 언성이 높아져요.”
수십 년 된 경력자라도 이때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동티모르에서 온 스물 한 살 된 청년도 부지런히 따라하며 이 일손을 돕는다. 이제는 제법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김발이 모두 바다 위에 펼쳐졌다. 이곳에 새로운 씨앗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김 양식이 잘 돼서 소비자들이 많이 먹는 걸 보면 좋아요, 흐뭇하죠.”
같은 시각, 수확을 눈앞에 둔 또 다른 김양식장. 작은 배 한척이 김발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고리 걸어라”
원하는 위치에 다다르자 작업에 돌입하는데 김발의 끝에 고리를 걸고, 배의 힘을 이용해서 김발을 뒤집는다. 고리로 낚아채서 힘껏 당기면 줄줄이 엮여있는 8개의 김발이 차례로 뒤집어 진다. 수백 개의 김발을 가로질러가면서 모두 일일이 뒤집는 작업을 한다.
“몇 줄이나 작업하시는 거예요?”
“처음 작업한 것부터 이것까지 200줄이요. 김발을 뒤집는 작업은 초보자나 안 해 본 사람들이 하면 힘들어요. 그물을 놓치기도 하고 손가락도 아프고요.”
배와 한 몸이 되서 신속하게 처리해야하는 작업. 배 끝에 달린 작은 고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은 일 중 하나다. 배가 뒤집고 지나가면 부패의 높이만큼 김발이 물 위에 살짝 뜨게 된다. 이렇게 뒤집는 이유는 바로 이것을 없애주기 위함이다.
“이게 김이 아니고 갯벌 찌꺼기에요, 갯벌 찌꺼기를 말려줘야 해요.”
발 사이사이에 훼방꾼이 붙어있는 것.
“갯벌 찌꺼기를 말려서 없애야 김이 밀고 나와서 자라요. 김발을 놔둔다고 해서 김이 자라는 게 아니에요, 뒤집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해줘야 김이 자라요.”
궂은 날씨 탓에 삼일 만에 나온 양식장. 반갑지 않은 불청객들이 김발 가득 붙어있다. 짧은 겨울 햇빛에 600여 줄의 김발을 모두 뒤집어 주기 위해서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햇빛을 두 시간 가량 쬐어준 후 또다시 뒤집어서 처음과 같이 바닷물 속에 잠기도록 한다. 몇 시간동안 엎드려서 작업을 하다보면 기진맥진해질 정도로 힘이 부친다.
“계속 엎드려 있으니까 가슴이 아파요. 그물을 잡으려고 계속 가슴을 누르고 있으니까요.
날이 안 좋아서 바다에 자주 못 나갈 때는 한 번에 작업을 다 해야 해요. 그럴 때 힘들어요.”
바다 위로 들어난 김발에는 가지각색의 쓰레기가 걸려있다. 밧줄부터 비닐까지 어민들의 속을 태우는데 이렇게 걸려있는 쓰레기는 손으로 일일이 제거해 줘야한다.
“저기보세요, 쓰레기 보세요. 김발 쓰레기예요. 우리 지역 사람들이 버린 게 아니고요, 다른 지역에서 버린 거예요.”
대형쓰레기가 걸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물이 뒤엉켜 있어서 더욱 심각한 상황.
김발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제거해야 한다.
“쓰레기가 꽉 끼었나 봐요?”
“네.”
수십 분을 고전한 끝에 겨우 배 위로 끌어 올린다. 이럴 때마다 진이 쏙 빠진다.
“쓰레기 처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요, 그럴 때 힘들어요. 쓰레기가 덜 걸리고 사고 안 나길 바라면서 바다에 나와요.”
그렇게 하루 작업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난 뒤 선장님의 집에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한다. 상의 가운데 자리에 김이 올라간다. 갓 채취한 생김으로는 따뜻한 김국을 끓였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고 그 맛이 좋아서 국민반찬으로 사랑받는 김과 함께 속을 든든하게 채워본다.
“김국 맛이 어떠세요?”
“시원하고 좋아요.”
“속이 확 풀리세요?”
“네.”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김국 먹으려면 김이 나는 지역에 가서 먹는 방법밖에 없어요. 김국 가지고 가도 다 상해요.”
산지에서 먹는 제철음식만큼 몸에 좋은 보약이 또 있을까.
밤이 깊어가는 시간.
“아픈 데 없어? 파스 안 붙여?”
“허리요.”
김 채취 기간 동안 몇몇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함께 생활을 한다. 서로 파스를 붙여주며 동료의 아픈 곳을 보듬어준다.
“힘쓰는 일을 하니까 허리를 삐끗하고요, 일하다가 팔을 부딪치니까 팔꿈치도 아프고요, 만져보면 손바닥이 굳은살 때문에 딱딱해졌어요.”
손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단단히 박이는 동안 다들 꺼려하는 고된 생활에도 익숙해 져버렸다.
“마음먹고 ‘육지 생활을 해야지’해도 안 되더라고요. 바다에서 하는 일이 몸에 배서요.”
함께이기에 힘든 바다일도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전남 장흥에 바닷가 마을.
이곳 앞바다에는 지주식 김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김발을 물에 띄우는 부유식과 달리 지주식은 말뚝을 박아 김발을 묶어놓고 김을 키우는 방식이다.
이른 새벽부터 작업선이 김양식장으로 향한다. 수확을 하는 날이면 이웃끼리 돌아가면서 품앗이로 일손을 돕고 있다.
“새벽에 가야 일이 빨리 끝나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김 채취 빨리하고 들어와야 해요.”
10여분을 달리면 김양식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날은 김발이 뒤집어질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바닷물도 얼음장처럼 차다. 작은 배가 일렁이는 파도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김발을 거둬들인다. 비교적 가까운 바다지만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며 김을 채취하는 작업은 보통 인내력이 아니면 견뎌내기 힘들다. 김발이 제대로 올라오도록 계속해서 손으로 끌어줘야 하는데 장갑을 몇 겹씩 끼어도 감각이 없을 정도로 손이 시리다.
“장갑을 안에도 끼고 밖에도 끼고 두 장 꼈어요.”
“안에 고무장갑 꼈어요?”
“고무장갑 안 끼면 손 시려서 일을 못 해요.”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온다. 파도도 점점 거세지는데 이럴 때는 촘촘히 박힌 대나무 말뚝을 조심해야 한다.
“멈춰”
똑바로 가지 못하고 옆으로 밀리자 김발이 배 끝에 걸리고 만다. 기다란 말뚝이 배의 앞길을 막아선다. 끝도 없이 늘어선 말뚝이 장애물로 변하는 순간 중심을 못 잡고 밀리는 통에 김 채취는커녕 배를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이다.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이들은 김 채취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
다음이야기
“배 밀어줘?”
순식간에 몰아친 강풍에 발이 묶여버린 김 채취 작업선.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 위 사투가 벌어진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아찔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한창 철을 맞아 김 가공 공장은 24시간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돌아간다.
“여섯 시간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요.”
매서운 추위와 거친 강풍에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내는 이들의 이야기가 다음시간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