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건강과 안전 챙기자”…재해보장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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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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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ILO)나 미 노동통계국(BLS)은 농업을 광업, 건설업과 함께 3대 위험산업으로 분류한다. 농사일을 하면서 생기는 각종 질환과 사고를 뜻하는 농작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근골격계질환, 농기계 사고, 농약중독을 비롯해 축산농가 호흡기질환, 화훼농가 알레르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일본농촌의학회,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이 지난 11월3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농작업재해의 실상과 대책을 알아본다.
◆농작업재해 심각=고상백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농업인들이 당한 손상 가운데 50% 정도는 직업손상”이라고 말했다. 국가안전관리전략 직업안전연구 조사결과, 국민 총손상 가운데 22.5%가 직업손상으로 나타났다. 농업인의 경우 50%가 직업손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농가들이 가입하는 농업인안전공제 분석자료에 따르면 농작업재해 천인율(연 근로시간 1,000시간당 발생한 근로손실일수를 구해 재해의 강도를 나타내는 통계)은 17.5로 근로자 산재 천인율 7.7보다 2.2배 높았다. 또 전국 10개 표본병원 응급실환자의 직업손상 분포를 살펴보니 농림어업 종사자가 6.3%로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자의 7.2%와 비슷한 상위권이었다.
농작업재해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수치는 더 많다. 근로자 건강실태조사에서 농림어업 종사자는 손상보고율(사고 혹은 질병으로 1일 이상 결근한 경우)이 4.51%로 전체 직업군에서 가장 높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의 직업분류에 따른 손상률도 농림어업 종사자는 7.4명으로 전체 평균 7.5명과 비슷했다.
농진청의 농업인 업무상 질병 및 손상조사(1차 2008년, 2차 2010년 기준) 결과, 반나절 이상 일을 못했거나 병원·약국을 방문해 치료가 필요했던 사고 중독경험률이 각각 5.6%, 4.6%에 달했다. 2004년 조사한 근골격계 질환은 비농업인의 2.4배였다.
사망원인 통계자료 분석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국가별로 기준연도가 약간씩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10만명당 연간 농업인 사망재해율은 125.7명에 달했다. 미국 25.1명, 인도 22명, 캐나다 13.7명, 이탈리아 11명, 호주 10.9명, 영국 8명, 프랑스 5.8명과 큰 차이가 났다.
이수진 한양대 의대 교수는 “우리 농업인은 유럽이나 북미 농업인과 다르게 일반주민이나 도시민에 비해 건강수준이 더 나쁜 양상을 보인다”며 “각종 질환과 사고로 인한 손상이나 사망이 상대적으로 흔한데 농작업 수행이 이들 질병의 발병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업인재해보험 도입을=이 같은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농업안전에 대한 국가관리시스템은 미비하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농업정책을 수립할 때 농업인이 겪는 농작업재해에 대한 지원과 관련 연구가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특별법’에 규정된 농작업재해 예방·치료 및 지원 관련 시책을 시급히 실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농업인재해보험 도입이다.
이준동 한국농민연대 상임대표는 “농업노동재해를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국가에서 책임지고 보상하는 제도가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이성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부회장은 “산재 수준의 농업인노동재해보상보험법을 도입하고 일정 기간까지는 국고 보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교수는 “농작업재해 보장제도 실시는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농약중독 및 기타 재해예방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농작업재해를 관리·감시·예방하고 재활을 도울 수 있는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 윤조덕 한국사회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범국가적차원에서 농업인의 재해 예방과 발생 후 신속·전문적 치료 및 재활, 적절한 보상을 위한 인프라와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경숙 농진청 농작업안전보건 연구실장은 “법에 규정된 농작업안전보건센터 설립과 농업인재해보장제도 도입, 안전농가 인증제도 등 정책제안을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유관기관간 협력체계를 만들고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연구지원, 농가 조직화 및 맞춤형 정보·교육 제공에도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현황과 예방책
일본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영농형태 때문인지 농작업재해 발생이 크게 줄지 않고 있다.
오우라 에이지 도야마현 후생련 건강관리담당심사역에 따르면 1971년을 100으로 볼 때 2009년 일본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29.9%, 건설업은 16%로 대폭 줄었지만 농작업사고 사망자는 112.1%로 오히려 증가했다. 구체적으로는 건설업사고 사망자가 2,323명에서 371명으로 감소했지만 농작업사고는 364명에서 408명으로 늘었다.
2000년 표본지역(전국의 23.6%, 202만6,000명)을 선정해 농기계 및 농작업사고를 조사한 결과, 1년간 1만500여건이 발생했다. 이를 전국적인 규모로 산출해 보면 약 4만5,000건에 해당한다. 기종별로 보면 예초기(18.3%), 트랙터(15.4%), 트럭(9.4%), 콤바인(5.7%), 경운기(5.1%) 등 상위 10개 기종이 전체 사고의 70%를 점유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농업이 개인노동 중심이며 농작업 안전관리가 조직적으로 실시되지 않고 고령자의 농작업 사고가 증가하는 것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오우라 심사역은 “특히 노동재해의 경우 노동기준법, 노동안전위생법 등 법적인 규제가 있지만 농작업사고는 그렇지 않아 사고실태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심각성을 인식, 농작업 안전활동을 추진하기 위한 다각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령자에 대한 안전의식 함양, 조직적인 안전교육 실시, 사고양태 분석을 통한 실용적인 안전교육용 매뉴얼 개발 등에 나서고 있다. 또 2010년에는 일본농촌의학회와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전국연합회, 농수성이 참가해 ‘전국 농작업 사고방지대책 연락협의회’를 설립했다. 다쓰미 마사노부 일본농촌의학회 부이사장은 “여러 기관, 단체, 조직, 개인이 노력해 온 정보를 공유하고 유효한 사고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설립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협의회는 지난해 말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서 농업인과 연구자 및 정부, 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농작업 사고 박멸을 위한 모리오카 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